단가 진국명산은 본래부터 단가로 불렸던 노래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이미 정가(正歌) 가운데 가곡(歌曲)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삭대엽(數大葉)(1) 계통의 노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편삭대엽(編數大葉)의 가사 가운데에 동명의 '진국명산'이라는 곡이 있으며 이 곡의 사설은 단가로서의 진국명산과 사설이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본래는 정가풍으로 노래되었던 것을 판소리 창자들이 일종의 레퍼토리 확장의 측면에서 수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언제부터 단가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의 형태로 굳어졌는가에 대해서는 고제(古制) 단가로서 조선(朝鮮) 후기(後期) 영조(英祖) 연간 이후를 즈음하여 형성되었다는 설과 근대 5명창 시기, 송만갑에 의해서 처음 불렸다는 설이 있는데 곡의 짜임새나 18세기 즈음의 여러 저작에서 '진국명산' 운운하는 사설이랄지 혹은 현행 단가 사설 속에 있는 몇몇 글귀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후자의 경우 증언 이외의 증빙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볼 때 이 단가는 판소리 형성기와 근접한 시대에 출현한 고제 단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기록의 한계로 고종 이전의 명창들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곡의 대표적인 명창들은 박기홍(朴基洪)과 송만갑(宋萬甲)이다. 이후로는 유성기 음반 녹음을 통해서 이 곡의 명창들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전기한 송만갑과 더불어 장판개(張判介), 박록주(朴綠珠), 신금홍(申錦紅), 조소옥(趙素玉), 신숙(愼淑) 등이 이 단가를 녹음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신금홍과 조소옥, 신숙의 경우에는 그 사승관계를 알 수 없으나 목에 잔기교가 거의 없고 통성에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는 등 고제, 혹은 동편제적인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고, 장판개와 박록주는 각각 송만갑과 송만갑의 제자 김정문에게 직접 소리를 익힌 바 있으므로 역시 그 계통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 단가는 비교적 고제 유파에 속하는 동편제 유파에서 주로 불렀고, 전해졌음을 알 수 있겠다.

  이 단가는 현재까지도 여러 사람에 의해서 불리고 있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전반부에 서울의 경관을 이야기하고 중반부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후반부에 풍류(風流)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내용의 사설이 담겨 있고, 거의 대마디 대장단에서 벗어나지 않는 등 그 구성은 겅의 같다.

  현재까지 이 단가의 전승 계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송판 계열>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장판개
                                               →김정문→박록주→박송희
                                                           →강도근→전인삼
                                                           →박초월→조통달, 남해성
                                               →박봉래→박봉술→송순섭
           →박만순→박기홍

  <정판 계열>
  [알 수 없음]→정응민→정권진→성우향
                                           →정회석, 윤진철

  <비계열>
  김소희
  박동진

  위 계열 가운데 비계열의 김소희와 박동진은 직간접적으로 송만갑의 소릿제를 학습한 경험이 있으므로 이 과정을 통해 배웠으리라 추정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정판 계열의 경우에는 일단 정판 내부에서도 이 소리를 박유전의 소리를 보고 있지는 않으며, 김세종으로부터 전해진 동편 계통 소리가 아닐까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이들 전승자 가운데에 이 단가를 녹음으로 남겼던 이들은 전기한 송만갑과 장판개 이외에 박록주와 박송희, 강도근, 전인삼, 박초월, 송순섭, 정권진, 성우향, 정회석, 윤진철, 김소희, 박동진 등이다. 아래의 사설은 이들의 녹음자료 가운데 필자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송만갑, 박록주, 박송희, 전인삼, 박초월, 송순섭, 정권진, 성우향, 정회석, 윤진철, 박동진의 녹음을 직접 채보하여 적은 것이다.

  <송만갑 唱本 진국명산> (2)
 
  진국명산 만장봉이오 청천삭출 금부용은 거벽흘립하야 북주로 삼각이오 긔암은 두긔 남악은 잠뒤로다 좌룡은 낙산 우호 인왕 서색은 반공 응상궐이오 숙기는 종영 출인걸이라  미재라 동방 산하지고려 성대태평으 의관문물 만만세지금탕이라 연풍코 국태민안커날 인유이 봉무하고 면악 등림 취포반환을 허오면서 감격군은 허오리라 남산 송백은 울울 창창 한강 유수는 호호양양 주상전하는 차산수의같이 산붕수갈토록 성수무강허사 천천 만만세를 태평으로만 누리소서 우리도 일민이 되서 격양가를 부르리라 부귀와 공명은 세상 사람에게 모두 다 전하고 가다가 저물거든 기산대하처으 명당을 가려서 전후좌우로 유정한 친구벗님 명기명창 풍류랑이 좌우로 눌어앉어 일모가 도궁토록 떡쿵 풍악치고 남녀인생들이 늘어앉어 한잔 더먹소 덜먹소 허여가며 거드렁 거리고 노네



  (1) 가곡의 별칭. 일명 '자진한잎'이라고도 하며 27곡의 가곡 가운데에 초수대엽에서부터 소용까지 14곡(우조 7곡, 계면조 7곡)을 일컬어 삭대엽이라 하기도 한다. 대개 현재 가곡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추정하며 삭대엽 외에도 가장 느린 만대엽과 그 다음으로 느린 중대엽 등이 있어서 이들을 모두 '대엽조'라고 불렀다. 이미 고종 대부터 만대엽과 중대엽이 사라졌기 때문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곡의 원형으로 평가한다. 근래에는 가곡을 노래 없이 기악곡으로 연주할 때에 자진한잎, 혹은 삭대엽이라는 말을 쓴다.

  (2)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 (1) 판소리 5명창 中 발췌 : 송만갑 唱, 한성준 鼓, 1930년 컬럼비아 녹음 복각.
Posted by 蝟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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