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圍離庫 2014. 11. 27. 06:16


  좋은 목이나, 목놀림을 따오는 것을 '표목을 딴다.'고 한다. 내 자랑 조금 하자면, 나는 표목을 기가막히가 잘 땄다. 물론, 잘 따는 것과 별개로 잘 따라했느냐-의 문제가 나오는데 난 아쉽게도 그건 잘 못했다. 누군가의 소리, 혹은 노래를 들었을 때, '아 이 사람은 어떻게 목을 쓰고 있구나.'하는 거는 기가막히게 잘 잡아내는데 그걸 따라하라고 하면 디테일이 떨어지는거지. 내 독공의 과정은 그 디테일을 살리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성대는 천품을 타고 나진 못했다. 타고난 목청은 큰 편이었다. 근데 거기까지. 고음이 쉬이 터지지 않았고, 저음은 저음대로 깊이가 없었다. 차라리 굵직하고 허스키해서 강렬하거나 아예 고음이 맑고 예쁘게 빠지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은, 정말 특색도 없고, 좋지도 않은 그런 목.


  표목을 아무리 잘 따와서 그걸 적용시키려고 해도 자질이 없었던거지.


  그 자질이 없었던 것에서 포기를 했어야 했다. 없는 자질 만들어 보겠다고 틈만나면 소리를 지르고, 틈만나면 연습하고- 그래서 성대에 무리가 와서 피도 제법 토하고. 한번 피를 토하고 나면 '쉑쉑'거리는 소리에 다시 살을 붙이고. 근데 그렇게 하는데도 허스키해지지 않는 목소리를 원망하고, 그때뿐인 목소리를 원망하고.


  간신히 박자를 갖고 노는 재주, 그 재주에 억지로 만들어 놓은 목을 붙이고, 원래부터 유일하다시피 타고난 자질이었던 쉬지 않는 목청을 더해서 소리를 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6~700석 짜리 강당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하기도 했고, 야외에서도 마이크 쓰지 않고 공연한 예가 허다했다. 그럴 때면 내 세상 같이 소리했다. 발림을 섞어가고 연기를 섞어가면서 아주 내 세상 같이.


  이게 망가지기 시작한건 4년쯤 전의 일이다. 연습은 뒷전, 술을 마시고 밤새고- 사실 전공 자체가 이 쪽이 아니었으니 연습이 뒷전이 된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술을 너무 마셨다. 매일매일 빈속을 게워낼 만큼 깡술을 마셔댔으니까. 좋지 않은 목은 더욱 잠겼고, 깊이를 잃어갔다. 심각하다고 느껴서 다시 연습을 시작한게 재작년 가을 무렵이었는데...


  며칠 전 피를 토했다. 이전의 성대결절에 의한 각혈보다는 좀 더 심한 정도의 각혈이었다. 성대의 살점이 떨어져 나왔다. 병원에 가보니 낭종이 보이고, 염증이 심하다 못해 새카맣다고 하더라. 예전에도 그정도는 아니었었는데.


  목이 쉭쉭거리는건 물론이고 조금 크게 소리를 내려면 옛날엔 고음 지르는 것처럼 힘을 주어야 하고 그러면 통증이 심하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하더라. 일단 염증을 잡자는 쪽이 더 강하긴 했지만.


  뭘 하던- 이제 내가 만들었던 소리와 작별할 시간이 온거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든다.


  물론 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 근데 그건 자질이 뛰어난 극소수고.


  삶의 한 축이 또 뜯겨져 가는 기분이다.

Posted by 蝟郞
,


【진양】

  왈칵 뛰어 달려든다. 디디는 초마[각주:1]자락 쭉 함부로 좍쫙 찢어 도련님 앞에다가 내던지고 "아유! 여보 도련님, 여보시오 도련님, 아이고 어쩌나? 아이고 내 신세야.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이별 말이 웬말이오? 작년 오월 단오일에 광한루서 처음 뵙고 적적무인 심야에 나의 집을 찾어와서 도련님은 거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노모다려 말을 헐제 무어라고 말하였소? 무어라고 말하였소? 무어라고 말을 했소? 죽지 마자고 백년기약, 잊지 마자고 백년맹세, 맹세기약을 어이하고 이런 일을 하랴? 사람 죽는 양도 보자허나? 향단아, 건넌방 건너가 마나님께 여쭈어라. 나는 오날 도련님 떠나는데 사생결단을 한다고 죽는 줄이라 알으래라." 도련님이 기가 맥혀 춘향의 목을 후리쳐 않고 얼굴 대고 문지르며, "아이고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우지를 마라."

  1. 치마의 방언.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일대의 방언이다. 경기 방언에 보다 더 친숙한 이동백 이외에도 지금 현전하는 춘향가에도 등장하는 방언이다. 사설이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별가 더늠의 창자로 확인되는 이가 모흥갑(牟興甲)인데 그 출신지가 경기도 평택, 안성, 진위 근교로 전해오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Posted by 蝟郞
,

  故 성우향 선생의 후계자로 꼽히는 김수연 명창의 보성소리 춘향가 中 사랑가.
  이 대목은 음악적으로 성우향 명창이 최고로 꼽는 장기 중 한 대목이었다. 성우향 명창은 보성소리의 힘있으면서 기교 넘치는 기법과 박력있는 붙임새가 돋보이는 소리제를 가졌고, 김수연 명창은 스승의 그러한 일면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명창이다.


Posted by 蝟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