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전근대 중국과 한국 - 필요에 따라서는 일본도 포함 - 의 사상 관계 문헌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과 관련 문헌,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원전이 되는 유경 및 제자백가서의 독서, 그리고 독서법(?)을 틈틈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사유의 변화를 거쳐서 이러한 '사상서'들을 독해했는지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나와 마찬가지로 전근대 동아시아의 사상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조금의 참고 사례로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큰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보니 특별한 범례는 정해 놓은 것이 없고, 우선 아래의 간단한 틀 만을 정하였다.


  1. 다루고 있는 서적은 사서/오경/제자/기타의 4가지로 분류한다.

  2. 일종의 학습법이라 할 수 있는 '독서법'에 관련된 내용은 '서적분류+총설'의 틀을 붙여서 범주화하고 그 뒤에 글의 내용에 따라 간명하게 정리된 소제목을 쓴다.

  3. 그 외에 세부 내용에 대한 글은 '서적분류+독서'의 틀을 적용하여 소제목을 쓴다.


  사서총설 (1) 『논어』 읽기


  동양학에 있어서 『논어』라는 서물은 제법 대중적인 책이다. 그만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석서가 나왔고, 한국어 번역본 또한 80여종이 출간, 판매중이다.[각주:1] 그렇기에 사상서, 특히 유가 철학 원전에 있어서 『논어』는 기본과 같이 인식되어 왔다. 굳이 사상사 연구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한문독법을 익히려는 사람들이라면 『논어』는 『맹자』와 함께 반드시 읽고 넘어가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전문적으로' 파고들기 어려운 것이 『논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현재 판매되고 있는 80여종의 『논어』 번역서 가운데 상당수가 교양서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선진문헌이나 선진시대 유가철학 전공자의 '연구번역'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후유(候儒)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논어』 속 공자의 발언은 아주 비근(卑近)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고, 형태 상 잠언집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헌들은 결코 단순한 상황에서 저술되지도 않았고, 또 결코 단순한 상황에서 '구현'[각주:2]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대에 최소한 『논어』를 전문적으로 독해하려는 - 사실 『논어』만 그런 것은 아니다. - 이들에게 있어서 나름의 이해의 틀을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논어』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해의 틀을 수립해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주석을 통해서 『논어』라는 서물을 이해하는 하나의 지표로 삼곤 한다. 특히 주희(朱熹)의 『집주』(集註)는 현재 한문교육기관이나 개인 서실에서 진행되는 『논어』 강독에서도 기본 교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 역시 이러한 과정을 추천한다. 물론 내가 동일한 과정을 통해 공부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집주』라는 주석이 『논어』를 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전에 가까운 성격이 짙은 『집해』(集解)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목요연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논어』라는 서물을 하나의 틀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집주』는 대단히 효율적이다.[각주:3]


  문제는 다음이다. 이 틀을 기반으로 어떤 경로를 통하는 것이 『논어』 이해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일까? 철학적으로는 다른 주석을 참조하는 것을 추천하는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자의 전기와 그 시대를 포괄하는 역사를 통해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공자의 전기 조차도 『논어』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자 개인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논어』를 분절해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해는 『논어』를 제외한 다른 문헌에 나타나는 공자의 언설과 연결시킬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이롭다. 기본적으로 경전 주석이 이경해경(以經解經, 경전을 가지고 경을 해석한다.), 혹은 이전해경(以傳解經, 경에 대한 해설이라는 전을 가지고 경을 해석한다.)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공자의 언설'을 확장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다른 주석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논어』 속 언설을 이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을 거쳐서 다른 주석을 접하는 것이 그 주석을 이해하는 것 뿐 아니라 해당 주석을 통해 구현된 『논어』의 상을 살펴보는 것에도 보다 용이하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2018년 5월 현재, 『논어』의 독해에 있어서 다음의 보조 자료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1. 전근대 주석 : 『논어집주대전』(비지 포함) / 『논어주소』

  2. 현대 주석 및 번역 : 『논어역주』 (양백준), 『집 잃은 개』(리링)

  3. 역사 기록 : 『사기』 및 춘추시대 연구서 다수.

  4. 한국어 번역본 : 『논어한글역주』(김용옥, 통나무),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김동인 외, 이인서원), 『논어주소』(정태현, 전통문화연구회)

  1. https://blog.naver.com/forevermf/221208104291 [본문으로]
  2. 나는 기본적으로 후대의 경전 및 제자서에 대한 주석작업을 주석이 이루어지는 당대에 대한 '구현'으로 파악한다.그것은 일종의 사회사상으로 출발한 동아시아 - 정확히는 중국 - 전근대 사상에 있어서 숙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따라서 이러한 저술들은 저술 자체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주석의 시대적 배경을 서로 공명시켜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어떠한 주석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거나, 본문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물론 주석이나 본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헤 어떠한 해석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판단 정도는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물론 문헌학적인 한계, 사상적인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蝟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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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부정들.

圍離庫 2018. 3. 11. 23:08


  무조건 내가 틀렸다고들 하니 뭐 더 무슨 말을 하랴?

  언제나 그래왔듯 다들 극렬히 부정한다.

  나 스스로도 나를 부정하는 지경이니 더 무슨 말을 할까?

Posted by 蝟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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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 세는 나이)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주요 인물들의 나이.


인조(仁祖) : 1595년생, 당시 나이 42세.

김류(金瑬) : 1571년생, 당시 나이 66세.

최명길(崔鳴吉) : 1586년생, 당시 나이 51세.

이시백(李時白) : 1581년생, 당시 나이 56세.

김상헌(金尙憲) : 1570년생, 당시 나이 67세.


- 이상, 영화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1. 김상헌과 김류는 1살차이의 동년배이므로 당연히 두 사람의 나이가 비슷해 보이도록 분장해야 하지만 나이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나보이게 분장. 물론 배우 송영창과 김윤석의 나이 차이도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좀 이질적인 부분.


이서(李曙) : 1580년생, 당시 나이 57세, 병자호란 당시 병조판서로 재직 중 과로사.(1637년)

김자점(金自點) : 1588년생, 당시 나이 49세, 도원수.
김경징(金慶徵) : 1589년생, 당시 나이 48세, 강도검찰사.(강화도 방어 총책임자)

이경직(李景稷) : 1577년생, 당시 나이 60세, 부호군 겸 비변사 당상.

이경석(李景奭) : 1595년생, 당시 나이 42세, 대사헌 겸 예문관 부제학.

원두표(元斗杓) : 1593년생, 당시 나이 45세, 어영부사.

신경진(申景禛) : 1575년생, 당시 나이 62세, 형조판서 겸 훈련대장(?).

구굉(具宏) : 1577년생, 당시 나이 60세, 공조판서.

이기축(李起築) : 1589년생, 당시 나이 48세, 금군장->어영별장.

정온(鄭蘊) : 1569년생, 당시 나이 68세, 이조참판.


- 이상, 영화 남한산성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남한산성까지 호종한 주요 인물.


2. 영화 속에서 '병조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김류와 함께 까임대상1 처럼 취급된게 없지 않으나 실제로 이서는 당시 병조판서로써 재직하다 과로로 순직했던 인물로 김류 일파1의 취급을 받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실제로 남한산산성 방어 전력에서 총통을 전면에 배치할 것을 주장한 적도 있는 등, 전략적 감각도 있는 편.(남한산성 공방전에서 조선의 포병이 청군의 홍이포병을 저격해 격퇴한 일을 생각.)


3. 원두표, 신경진 등은 당시 나름의 군사적 성과를 거둔 인물. 특히 신경진은 60세가 넘은 노구의 나이에도 수하 병사를 이끌고 적군을 쳐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4. 영화 속에서 김상헌이 칼로 자결하지만, 실제 칼로 자결을 꾀했던 인물은 정온이다. 정인홍의 문인이지만 폐모정청 당시 정인홍과 갈라선 인물. 본래는 단도로 할복했다가 실패했다. 김상헌은 엿새 동안 단식을 하다 목을 매었지만 가족들에게 구해졌는데, 가족이 보는 앞에서 했는지, 아니면 다른 정황이 있는지는 불명.


  덧) 역시 당시 남한산성에 있었던 장유 같은 인물은 일단 제외.(...) 강화도에 피신했던 인물들도 일단 김경징을 빼고는 제외.


Posted by 蝟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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